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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위의 유대감: 음식을 통해 나누는 사랑

생활 발자국 2024. 9. 21. 15:47

음식, 사랑, 그리고 삶의 연대: 먹는 것의 의미

먹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본적인 활동 중 하나입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이 때문에 먹는 행위는 생존과 직결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는 '밥줄', '밥벌이', '밥그릇 싸움' 등 먹는 것과 관련된 수많은 표현을 일상 속에서 자주 사용합니다. 이처럼 먹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삶의 모든 측면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특히 먹는 것의 중요성은 문화적, 사회적 차원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우리는 인사말부터 먹는 것과 관련이 깊습니다. "식사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은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며, 헤어질 때 "언제 밥 한번 먹어요."라는 인사말도 자주 사용됩니다. 이러한 인사말이 단순한 인사치레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식사 자리를 통해 관계를 맺고, 유대감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사랑의 메타포로서의 음식

음식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을 넘어 사랑과 정(情)을 표현하는 메타포로 자리 잡은 것은,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겪어온 빈곤과 어려움의 시절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국 전쟁과 그 후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가족들은 자주 부족한 음식을 서로 양보하며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메타포로서의 음식은 가수 god의 노래 《어머님께》(1999)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노래에서 어머니가 자식에게 짜장면을 양보하며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가사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가난한 시절의 어머니들이 자식을 위해 자신의 배고픔을 감추고 자식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는 모습은, 그 시절의 사랑이 얼마나 절실하고 희생적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경제적 어려움이 다소 해소되었지만, 여전히 음식은 사랑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남아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바쁜 삶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시간을 내어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정성껏 끓여 주신 된장국 같은 집밥의 가치는 더욱 커져만 갑니다.

 

다이내믹 듀오의 노래 《어머니의 된장국》(2008)은 이러한 현대인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근과 인스턴트 식품에 지친 현대인들이 느끼는 어머니의 된장국에 대한 그리움은 단순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과 가족의 유대감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음식으로 치유하는 상실감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추억, 사랑을 담아내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의 자전적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 2021)』는 이러한 측면을 잘 보여줍니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자우너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H마트에 가서 한국 음식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는 경험을 합니다. 이 슈퍼마켓에 진열된 음식들이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상실감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이러한 음식들을 통해 상실감을 치유해 나가며, 어머니와의 유대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우너에게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어머니와의 유대이자,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통한 연대와 포용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영화 《나의 올드 오크(The Old Oak, 2023)》는 음식을 통해 연대와 포용의 의미를 확장시킵니다. 영화는 영국의 한 폐광촌을 배경으로, 시리아 난민들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발생하는 갈등과 연대를 다룹니다. 초기에는 마을 사람들과 난민들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존재했지만, 펍을 운영하는 TJ가 자신의 공간을 난민들에게 개방하며 함께 밥을 먹을 것을 제안합니다. "우리의 도움과 한 끼 식사가 필요한 아이들을 돕고 싶어. 전쟁을 피해서 우리 동네에 온 새 친구들을 따뜻하게 맞고 싶어. 이 공간에서 같이 어울리고 나란히 앉아서 함께 밥 먹고 싶어." 이 대사는 음식을 통해 '우리'와 '너희'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포용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결론: 음식에 담긴 사랑의 힘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밥을 먹고살지만, 사실은 그 음식에 담긴 사랑과 유대감을 먹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음식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핵심적인 요소로서,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만들어 줍니다. 음식을 통해 나누는 사랑과 정이야말로, 우리가 더욱 풍요롭고 따뜻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음식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이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